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형주 공방전 (문단 편집) ==== [[서황]]이 번성을 구원하다 ==== >적은 위두(圍頭)에 둔(屯)이 있고 또한 별도로 사총(四塚)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황은 위두의 둔영을 공격하는 것처럼 양성(揚聲-널리 소문을 퍼뜨림)하고는 은밀히 사총을 공격했다. 관우는 사총이 곧 무너지려 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보기 5천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서황이 이를 들이쳐 패주시키고, 포위망 안까지 깊숙이 추격하여 격파하니 (적군들은) 스스로 면수(沔水)에 투신해 죽기도 했다. > >태조가 영을 내렸다. > >“적이 참호와 녹각(鹿角)을 10중으로 에워쌌으나 장군이 싸워 모두 이겨 마침내 적의 포위를 함몰시키고 다수를 참수하거나 사로잡았다. 내가 30여 년간 용병해왔고 또 옛적에 용병을 잘하는 자들에 관해 들어보았으나, 장구(長驅-멀리 말을 몰아 달려감)하여 곧바로 적의 포위망에 돌입한 자는 일찍이 없었다. 게다가 번, 양양이 포위당한 일은 거(莒), 즉묵(卽墨) 때 보다 더 극심했으니 장군의 공은 손무(孫武-손자)나 양저(穰苴-사마양저)를 뛰어넘는다.” >---- >「서황전」 >한편, 조공은 서황을 보내 조인을 구원했고 관우가 이를 이기지 못하자 군을 이끌고 돌아갔다. > >''관우는 서황과 더불어 예전부터 서로 경애했다. 멀찍이서 함께 대화했는데 다만 평생(平生-평소)의 일만 말할 뿐 군사(軍事)는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뒤 서황이 말에서 내리며 영을 내렸다.'' > >''“관운장의 머리를 얻어 오는 자는 금 1천근을 상으로 내릴 것이다.” '' > >''관우가 놀라고 두려워하며 서황에게 말했다.'' > >''“대형(大兄), 이 무슨 말이오!”'' > >''서황이 말했다.'' > >''“이는 나라의 일이오.”'' - 「촉기(蜀記)」 >---- >「관우전」 >서황(徐晃)의 구원군이 도착하고 물 또한 점차 줄어들었다. 서황이 밖에서 관우를 공격해 조인은 포위를 허물고 벗어날 수 있었고 관우는 퇴주(退走)했다. >---- >「조인전」 >곧 땅속으로 길을 파고, 화살을 날려 조인에게 편지를 보내서 몇 차례 소식을 연락하였다. 북쪽의 지원군 또한 도착하여 힘을 합쳐 크게 싸웠다. >---- >「조엄전」 >마침 서황(徐晃) 등의 구원병이 도착했으므로 만총은 전력을 다해 싸워서 공을 세웠다. 관우는 곧 물러났다. >---- >「만총전」 마침내 조조가 보낸 [[은서]], [[주개]]와 12영의 지원군이 모두 도착한다. 서황은 위두의 둔영을 공격하는 것처럼 소문을 퍼뜨려 적군의 시선을 돌리다가 은밀히 사총을 공격했다. 관우는 사총이 곧 무너지려 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보기 5천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서황은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서황이 이를 들이쳐 패주시키고, '''10겹의 포위망 안까지 깊숙이 추격하여 격파하니 촉군들은 스스로 면수(沔水)에 투신해 죽기도 했다. 동시에 번성 내부에서도 호응하여 힘을 합쳐 공격하자''' 관우의 군대는 크게 패퇴하였다. 당시 관우군은 군세를 몇 갈래로 나눈듯한 정황이 보인다. 첫째가 번성 북쪽의 언성이고 둘째는 관우의 본진. 셋째가 사총과 위두라는 곳이다. 이때 기록을 보면 '관우가 몸소' 5천을 이끌고 서황을 역격하러 왔다고 하는데 이를 보면 관우의 본진 외에 병력을 이 세력들로 분산해 양번을 감싸고 있었던 걸로 해석 할 수 있다. 사총에는 10겹의 녹각과 참호가 있었으며 이를 보면 관우는 증원군만 아니라 포위를 풀려는 시도에 대해서 철저히 대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참호야 말로 방어에 있어 수비 보병이 큰 우위를 가지게 하는 요소. 허나 서황의 돌파 당시 이 곳은 관우가 겨우 지원한 5천 보기와 함께 결국 돌파당하고 마는 지점이 된다. 이것은 어찌된 것일까, 관우가 이 지역에서 수많은 지원군을 받은 서황을 상대로 급하게 5천 명의 보병과 기병밖에 동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관우는 이렇게 사방팔방 군대를 나눴다 각개격파당하고 만다. 번성의 포위를 푼 서황은 조조가 주둔 중이던 마피로 돌아간다. 그리고 조조는 서황을 다음과 같이 극찬한다. >서황은 진려(振旅-군을 거두어 개선함)하며 마피(摩陂-영천군 겹현의 동남쪽)로 돌아왔다. 태조가 7리 밖에서 서황을 맞이해 술을 마련해 큰 연회를 베풀었다. 태조가 술잔을 들어 서황에게 권하고 그의 노고를 위로하며 말했다. > >“번, 양양을 보전한 것은 모두 장군의 공이오.” > >이때 제군이 모두 집결하여 태조가 제영(諸營)들을 순시했는데, 사졸들은 모두 군진을 이탈해 (태조를) 보려 했으나 서황의 군영은 정제(整齊-가지런히 정돈함)하여 장사(將士-장졸)들은 진(陳)에 머물며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태조가 감탄하며 말했다. > >“서(徐)장군은 가히 주아부(周亞夫)의 기풍을 갖추었다 할 만하오.” >---- >「서황전」 어쨌거나 아직 위군은 관우를 완전히 몰아낼 수 없었다. >관우의 군사가 물러난 후, 촉나라의 배가 면수(沔水)를 점거하여 양양(襄陽)은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그때 손권(孫權)이 관우의 치중(輜重)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 퇴각하여 남쪽으로 돌아갔다. >---- >「조엄전」 위와 같이 관우의 군사가 물러난 후에도 촉의 수군은 여전히 면수를 장악 중이었고 양양성의 포위망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이 때 손권이 관우의 치중을 습격하니 관우는 마침내 남쪽으로 돌아간다.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 퇴각하여 남쪽으로 돌아갔다. 조인은 장수들을 모아서 상의했는데, 모두 이렇게 말했다. > >“지금 관우는 위기에 처해 있으니, 쫓아가면 반드시 체포할 수 있습니다.” > >조엄이 말했다. > >“손권은 관우의 연이은 싸움의 어려움을 틈타서 그 배후를 습격하려고 했지만, 관우가 구원병을 이끌고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 군대가 양쪽 군대가 피로해진 틈을 타서 공격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순종하는 말로 봉공(奉公)을 원하고 나와서는 틈을 타고 변화를 이용하여 우리 군사력을 관찰하려고 할 뿐입니다. 지금 관우는 이미 고립되어 달아났지만, 또 그가 손권의 심복이 될 걱정거리는 여전히 있습니다. 만일 패하여 달아난 자를 깊숙이 추격한다면, 손권은 관우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우리에게 재앙을 일으킬 것입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이 점을 깊이 헤아리셔야만 됩니다.” > >조인은 그래서 전투태세를 풀었다. 태조는 관우가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수들이 추격할 것을 걱정하여 과연 긴급히 조인에게 칙령을 보냈다. 그것은 조엄의 계책과 같았다. >---- >「조엄전」 한편 관우가 퇴각하자 조인 등의 장군들은 추격하려 한다. 하지만 조엄은 관우가 손권과 협력할 가능성을 들어 반대했고 조인은 전투태세를 풀었다. 그후, 추격하지 말라는 조조의 칙령이 도착하니 조엄의 계책과 같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